WW2 - OverSimplified (Part 1)

WW2 - OverSimplified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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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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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순 1000명에게는 첫 2개월 동안 Skillshare를 매달 99센트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설명의 링크를 한 번 클릭해 보시고 오늘 새로운 것을 배워보세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때는 1902년.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청년이 병역을 회피하려고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건너 갔습니다. 그는 사회주의에 크게 빠져서 노동 조합을 위해 일하고, 사회주의 신문도 쓰고, 유럽 ​​군주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자고 주장했고, 그냥 다- 했어요. 이것 때문에 무솔리니는 스위스 경찰과 약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포되고, 이탈리아로 추방되고, 다시 풀려나서, 스위스로 돌아와서, 다시 체포되어,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전에 피했던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초등학교 교사로 잠시 근무한 후, 마침내 다시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돌아옵니다. 무솔리니의 연설과 언론에 대한 능력은 그를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반대했고, 그래서 이탈리아가 1910년에 리비아를 식민지화했을 때, 그는 폭동을 일으켰고, 체포되었죠.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한번 그는 이탈리아의 개입에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했습니다. '잠깐만, '이 전쟁은 유럽 군주제를 전복시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환경을 만들테고' '모든 곳에 사회주의 혁명을 불러올 수 있겠어.' 그리고 갑자기 그는 전쟁에 찬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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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동료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대한 그의 새로운 입장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를 당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말하기를, "있잖아. 사회주의는 이제 됐어. 우리는 새로운 것이 필요해. 우리를 갈라놓는 계급 구분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한 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필요해. 우리는 지중해를 정복할 것이고. 로마 제국 시기처럼 모든 이탈리아인을 하나로 만들 거야. 나는 그걸 '파시스모(파시즘)'로 부를 거고 그게 이탈리아를 다시 위대하게 해 줄 거야." "그거 다 좋지만 무솔리니 씨, 머리를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어디 한번..." "대머리로 해보자고." ♪ 차이코프스키 - 1812 오버추어 ♪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으므로, 당연히 많은 땅을 얻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조금밖에 얻지 못했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쁜 경제와 약한 정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래서 무솔리니가 등장해서 그가 모든 문제를 고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의 파시스트 운동은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1922년에 그는 국왕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나를 총리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 총리가 될 테야." 그리고 왕이 말했죠. "네가? 무슨 군대로?" "이 군대요." "그럴만 하군." 그런 뒤 그는 자신이 중심에 있는 독재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파시스트 독재자 1호: "일 두체(수령)"] 유럽에 최초의 파시스트 독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음은? 독일이죠. [파시스트 독재자 2호: "히틀러"] 독일은 패전국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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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완전히 박살나 있었습니다. 독일은 영토를 잃었고, 라인란트 지역을 비무장지대로 만들어야 했고, 군대를 10만 명으로 줄여야 했고, 공군력을 가질 수 없었고, 연합군에게 가지고 있지도 않은 어마어마한 양의 돈(현재가치 약 8000억 달러)을 지불해야만 했고, 새로운 규칙도 생겨났는데, 어느 영국인이든 베를린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아무 독일인이나 골라서, 엉덩이를 죽어라 때려 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제가 만들어낸 거지만, 아마 독일인들이 당시 어떻게 느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경제 불황과 약해진 정부를 가진 상황에서 웃기는 콧수염을 단 작고 화난 남자가 등장해서 모든 것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자 독일인들은 매우 좋아했습니다. 히틀러는 1차 세계 대전에 병사로 참전했고, 광적인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독일의 굴욕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정당 출범을 도왔고, 1923년에 그의 지지자들과 뮌헨에서 행진을 시도했지만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계속해서 커졌고 1933년엔 대통령이 그를 수상으로 임명했죠. 히틀러는 스스로가 독일의 위대한 운명의 구세주라고 믿고 있는 완전히 과대망상증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스스로가 중심에 있는 독재 체제를 만들었고 이제 유럽에 2호 파시스트 독재자가 생겨났습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생각에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적을 가졌단 것이죠. 그래서 서로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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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 없어?" "프랑코?" "싫어?" "됐다고?" "나랑 친구하자!" "누구야?" 일본이었습니다. 그리고 막 중국 북부를 점령한 상태였죠.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죠. 일본은 200년 이상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단절하는 고립주의를 택하고 있었죠. 미국인들이 "우리랑 교역하자. 너도 좋아할걸?" 이라면서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그런 다음 서구 세력은 수많은 불평등 조약을 강요했고, 당연히 일본의 경제는 폭락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는 천연자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가져가기로 합니다.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치뤄 한국에 대한 영향을 확보했고, 중국의 땅도 잔뜩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와서는 "야, 그만 해!" 유럽 국가들한테는 일본이 어떻게 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알았어. 그냥 집에나 가야겠다-" 일본 : "잠깐!" 일본 : "지금 무슨 짓거리야?" 유럽 국가들 : "약해진 중국을 이용해서 영향권을 만들고 있지" 일본 : "내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유럽 국가들 : "우리도 알아." 일본 : "근데 너넨 내가 아무것도 못 가져가게 했잖아?" 유럽 국가들 : "알지." 일본 : "그거 좀 불공평한거 같은데?" 유럽 국가들 :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유럽 국가들 : "그럼 이만." 그래서 일본은 '집어쳐' 라는 생각으로 러시아와 전쟁에 나서서 승리해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병합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그들은 아시아에 있는 독일의 식민지와 섬들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일본 군대에 의해 조작된 사건인데, 만주에서 일본 열차가 폭파된 사건을 명분으로 일본군은 만주를 침공하고 점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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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재 상황은 이렇습니다.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모두가 그들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고 믿고, 모두가 연합국에 대한 적개심을 느끼고, 모두가 군사를 확장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독일을 살펴보면,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이 조약을 안 이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완전히 위반하여 첫번째 공군 편대가 설치되었고, 징병제가 도입되었고, 군대도 잔뜩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연합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죠. 그런 다음 히틀러는 비무장지대였던 라인란트에 다시 군대를 배치하죠. 연합군이 나타나면 즉시 퇴각하라는 명령과 함께요. 그런데도 연합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군대가 보강되자 히틀러는 계획을 2단계로 진행했습니다. 그는 아리아인의 인구를 급속히 증가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레벤스라움(생활권)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뜻으로는, 세계를 정복해야 했다는걸 뜻하죠 그러나 지금은 일단 유럽의 좋은 부분을 먼저 차지해야겠죠. 히틀러는 주위 이웃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연합군은 마침내 걱정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들은 '유화(appeasement)'라는 겁나 쓸모없는 외교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유화'는 대충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히틀러가 "나 그거 갖고 싶어!"라고 말하면 그리고 연합군은 "너 그거 가지면 안 돼-" "아... 알았어. 너 그거 가져도 되지만 더 이상은 가지지 마." "나 저것도 갖고 싶어!" 그리고 계속 그런 식이었습니다. 1938년에, 히틀러의 군대는 오스트리아로 진격했고, 아무 저항 없이 오스트리아를 가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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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 이제 여기는 독일입니다. 다음으로,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란탄드 지역을 요구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독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연합국은 뮌헨에서 히틀러와 회의를 열고 말하기를, "이봐, 우린 너가 원한다고 줄..." "잠깐만-" 체코슬로바키아 : "이 회의는 내 땅에 관한 건데, 저도 회의에 참석해야 하지 않나요?" "어쨌든, 우린 너가 원하는 걸 줄 거야." "정말로?" "그래." "그냥 이렇게?" "물론." "조건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지역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이 서류에 서명하기만 하면 돼." "알았어." 그리고 승리와 함께 영국에 돌아온 체임벌린 총리는 서명된 종이를 공중에 흔들고서 위기를 피했다고 선언했고, 세계 평화는 지속되게 되었고, 우리는 그의 업적을 기려 체임벌린의 동상을 세우고 매년 9월 30일을 체임벌린의 날로 기념하게 되었...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지역을 침략하고 있다!" "뭐라고?" "히틀러가 나머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략하고 있다고." "오. 날 속였어." "뭘 기대했어? 나 히틀러잖아." 무솔리니 역시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직 식민지가 아닌 나라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너무 뒤떨어져서 사람들이 우리의 탱크에 맞서 싸우는 무기가 고작 창이나 화살이나 나무로 된 창 같은 곳? [아비시니아] 오, 거기 있다고? 아주 좋아!' 그래서 무솔리니는 거기를 먹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또한 아드리아 해의 입구를 통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알바니아를 점령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마 일본이 (아마도) 기획한 다른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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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 다리에서 일본과 중국군이 총격전을 했고. 일본은 중국에 대해 또다시 침략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휩쓸었고. 양쯔강을 거쳐 중국 당시 수도인 난징으로 진격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일본의 최악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30만 이상의 중국인이 학살당한 '난징 대학살' 발생) 다시 유럽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강철조약'에 서명하며 그 관계를 공식화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폴란드를 향해 눈을 돌렸죠. 히틀러는 독일을 둘로 갈라놓는 '폴란드 회랑' 지역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연합국들은 정말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에게 폴란드에 대한 침략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경고했죠. 히틀러는 동쪽으로 그의 전진을 계속할 계획이었지만, 양면전쟁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탈린과 동맹을 맺으려고 했죠. "우리 둘 다 폴란드를 침략해서 서로 갈라먹는 것은 어때? 그러면 나중에 절대로 배신을 안하지 않을게. " "좋은 것... 같네여." 이 새로운 동맹은 서방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1939년 9월 1일, 독일 군대가 폴란드에 침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폴란드는 열심히 싸웠지만 양측에서 공격한 두 강대국들을 상대하기는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가짜 전쟁'으로 불리는 시기가 왔습니다. 모두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전쟁이죠. 프랑스는 '자르 랜드'에 약간의 공격을 가하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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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방어적인 입장을 유지했고, 잠시 후 돌아서서는 그냥 거기서 끝내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의 상태를 좀 말해보죠. 프랑스는 여전히 ​​1차 대전의 승리에 취해서 자신만만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때랑 그리 변하지 않았죠 프랑스군은 아직도 말을 사용하고 있었고 라디오를 사용하는 대신 오토바이로 메시지를 발송하고 있었습니다 사령관의 명령은 대개 매우 모호했으며, 병력들은 거의 통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독일 국경을 따라 방어선을 만들었지만, [마지노 선] 그 방어선을 영국해협까지 확장할 생각은 하지 않았죠. 프랑스군은 독일에 대항해 포격을 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보복이 두려웠거든요. 전쟁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적을 공격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영국의 사정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체임벌린 총리는 여전히 순진하게 전쟁을 외교로 끝낼 수 있다고 믿고 있었죠. 영국 공군은 독일 도시들을 폭격하는 대신에 선전 전단지(삐라)를 뿌렸습니다. 어떤 공군 중장은 이것이 화장지를 공급해주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얘들이 전쟁하는 동안 말이죠. 게다가 영국은 프랑스에 겨우 20만 명의 병력을 보냈습니다. 프랑스가 수백만 명을 동원할 때 말이죠. 영국과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한 전쟁을 피하려고 애썼죠. 그래서 그들은 북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노르웨이쪽으로요.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은 독일에 철광석을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또다른 중립국이었던 노르웨이를 통해서요. 그래서 연합국들은 두 나라에 독일로의 철광석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요청은 거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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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소련이 핀란드를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연합군이 말했죠. "그럼 노르웨이에 우리 병력을 보내도 될까? 그런 다음 스웨덴을 가로질러 가서 너희들의 절친인 핀란드를 도울 거야." (속마음 : 그러면서 철광석 광산을 죄다 접수하는거지) 그러나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여전히 ​​반대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노르웨이 주변의 해안에 기뢰를 깔았습니다. 모든 수송선이 국제 수역을 지나도록 하는 강제 조치였죠. 그들은 또한 이 지역에서 발견한 독일 화물선을 공격했습니다. 히틀러는 연합국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철광석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덴마크를 지나 노르웨이를 침략했습니다. 연합국은 노르웨이 해안을 따라 병력을 상륙시키기 위해 서둘렀지만, 이미 독일은 노르웨이의 비행장들을 장악한 상태였고 제공권을 바탕으로 싸울 준비를 마쳤습니다. 연합군은 후퇴해야만 했죠. 약간은 쪽팔렸던 이 실패 이후,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사임합니다. 그리고 윈스턴 처칠이 뒤를 잇는데, 약간 다른 방식으로 독일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히틀러의 전반적인 전략은 독일의 1차 세계대전 전략과 유사했습니다. 프랑스를 공격하고, 프랑스를 패퇴시키고, 이 과정에서 영국을 제압하며, 소련에 쳐들어간 다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죠. '가짜 전쟁' 기간에 연합국들은 히틀러에게 군대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습니다. 이제, 히틀러는 공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연합국은 벨기에에 군대를 배치하기를 원했지만, 벨기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놀라지 않은 움직임 속에서, 히틀러는 프랑스의 방어선을 허물기 위한 침략을 시작했습니다. 연합군은 전속력으로 벨기에에 뛰어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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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침략을 정면으로 맞서게 됐죠. 그리고 이 상황은 1차 세계대전이 되풀이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히틀러가 속임수를 쓰고 있었죠. 전격전. 독일군이 진격함에 따라 연합국은 수천 명의 난민을 서쪽으로 이주시켜야만 했고, 이것은 연합군을 지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을 보시면, 프랑스는 언덕과 숲이 가득한 아르덴느 지방을 거의 무방비 상태로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왜냐면 이 지역은 자연 환경 상 뚫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독일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이 지역으로 침투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50개의 사단을 때려박아 이 지역을 뚫고, 번개같은 속도로 연합군을 포위했죠. 이제 연합군의 대부분이 덫에 걸렸습니다. 독일군은 사방에서 연합군을 압박하면서 프랑스군을 없애버렸고, 영국군도 거의 쓸어버리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덩케르크에서 절박한 막판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젊은 병사들을 집에 데려오기 위해 영국의 민간 선박들까지 위험을 감수해 항해했죠. 대부분의 프랑스군이 끝장남에 따라, 독일은 아주 수월하게 진격했고 파리가 점령됨으로써, 프랑스가 무너졌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히틀러는 그렇게 해냈습니다. 히틀러는 프랑스의 붕괴와 함께, 영국 또한 희망을 잃고 평화협상을 제안하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성가시게도, 영국은 그러지 않았죠. 히틀러는 서부 전선을 장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을 강제로 굴복시키기로 합니다. 심리 작전을 동원해서요. 영국은 이제 외톨이 신세이고 히틀러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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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프랑스가 몰락하기 직전에, 이탈리아까지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영국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죠. 다음으로, 히틀러는 프랑스를 싹 다 점령하는 대신에 방어에 필요한 해안 지역만 먹고 프랑스는 독일의 괴뢰 국가로서 존속하게 했습니다. [비시 프랑스] 이렇게 하면 영국의 오랜 동맹인 프랑스가 독일편에 합류한 것처럼 보이죠. 히틀러는 또 영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프랑스의 해군 기지나 식민지들을 공격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것들은 히틀러에게 남쪽 방어선과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영국은 알제리의 프랑스 해군 기지로 가서 이 문제에 확실히 대처했습니다. 배들을 잔뜩 부숴 버렸죠. "그래, 한 번 해봐라." 그러자 히틀러는 영국 침공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독일군은 영국 땅을 밟기 전에 우선 하늘과 바다에서 우위를 점해야 했습니다. 영국 해협 전체에서요. 독일 폭격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수적으로 완전히 열세였던 영국 공군은 밤낮으로 용감하게 일했습니다. 독일의 공격을 진압하기 위해서요. 초반에 독일 공군은 영국 항구와 연안 시설을 목표로 삼았고, 그 뒤 영국 공군 기지를 공격했습니다. 국가 방위를 위한 영국 공군의 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리고 히틀러의 대규모 영국 침략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처칠은 베를린에 대한 작고 꽤 별것 아닌 폭격을 명령했습니다. 별로 많은 피해를 주지도 못했죠. 그러나 히틀러는 분노했습니다. 그는 즉시 독일 공군에게 명령을 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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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런던의 민간인들로 바꾸게 합니다. 아이들은 시골로 보내졌습니다. 부모와 떨어지게 되었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방공호로의 잦은 대피은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사기는 확고했죠. 미소 짓고, 뜨개질하고, 평소처럼 어울리고. 영국인들은 강철 같은 배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런던 시내로 공습 대상이 바뀌면서 영국 공군은 재정비할 틈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제 발에 총을 쏜 격이 됐습니다. 지금은 그냥 발 정도라고 치죠. 마침내 독일 공군은 런던에 대규모의 전면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공군이 그것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죠. 많은 독일 항공기를 파괴함으로써 영국은 제공권을 단단히 쥐게 됩니다. 히틀러의 침공은 미뤄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도시에 대한 폭격은 당분간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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