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전설의 일화 20가지

장미란, 전설의 일화 2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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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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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은 '아름다운 챔피언 몸매 5인'으로 뉴욕타임즈에 실린 적이 있는데요. 과거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 올림픽 현장에서 뉴욕타임즈가 뽑은 5인에 들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죠." " 그 후 숙소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바로 검색해봤어요. " 라며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장미란에겐 철의 여인, 여자 헤라클레스, 로즈란 등의 별명이 있습니다. 그 중 국민들이 재치있게 지어주신 '로즈란'이란 별명이 가장 맘에 든다고 하는데요. 이유에 대해 묻자 "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아요. " 라고 답했습니다. 장미란의 좌우명은 " 내가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자. "인데요. 애초에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 있네요. 못하는 걸 못했죠. 장미란은 1983년 강원도 원주에서 역도선수였던 아버지와 뜀박질을 잘했던 어머니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출생 당시 체중은 5.9kg였으며 역도를 시작하기 전까지 여느 자녀와 다름없는 평범한 딸로 자랐다고 하죠.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 예쁜 옷도 입히고 피아노 학원도 보냈지만 어릴 때부터 식욕이 좋았던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졌고 나날이 살이 불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된 어머니는 1998년. 중3의 장미란에게 역도를 권하게 됩니다. 그녀는 덩치도 큰데 힘까지 쓰는 운동을 시키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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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무척 원망스러웠다고 하죠. 당시 장미란은 학교 체력테스트에서 달리기와 멀리뛰기를 그냥 했다 하면 1등을 차지하며 운동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딸을 부모님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죠. 우여곡절 끝에 장미란은 힘겹게 역도장에 발을 처음 내딛었는데 그곳에서 “ 쟤는 남자보다 덩치가 크네”라는 누군 가의 말을 듣고 깊은 상처를 받아 바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후 그녀는 1주일간 어머니가 주는 음식을 거부하며 역도를 절대 하지 않기로 다짐했죠. 하지만 부모님의 끝없는 설득에 그녀는 결국 다시 역도장으로 향하게 됐는데요. 처음엔 자신도 없고 창피해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비밀로 하며 억지로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장미란의 마음에 변화를 준 건 바로 진심이 담긴 어머니의 편지 한 통이었죠. 그녀는 꿈과 비전을 가지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굳은 결심과 함께 본격적으로 역도에 대한 미래를 그려나가기 시작하며 역도부에 들어간지 약 일주일만에 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후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역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 장미란은 나가는 대회마다 최고 기록을 갱신하며 인생의 목표를 세우 되죠. 훗날 그녀는 인터뷰에서 " 그때 역도를 배우지 않았으면 자신감도 꿈도 목표도 없이 살았을 거예요. " "뚜렷하게 잘하는 게 없던 제가 역도를 만나 꿈과 목표가 생기고 자신감 있는 도전을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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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했습니다. 장미란의 키는 170으로 큰편이지만 체격은 가장 무겁다는 최중량급 여자 역도선수 중 최경량급으로 보일만큼 가장 작은편에 속합니다. 몸무게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치라고 하죠. 장미란은 할 수 있는한 최대로 체격을 키워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기본적으로 체격이 크고 무거운 쪽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최중량급에서 장미란의 체격 조건은 매우 불리했습니다. 장미란의 올림픽 라이벌 탕궁훙,무솽솽,멍수핑 등의 중국 선수들을 보면 체격이 거의 장미란의 2배 가까이 된다고 하죠. 한 일화로 그녀는 과거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저보다 2배 가까이 큰 선수들 사이에서 찍힌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어요." 그걸 본 팬들이 "언니가 제일 예뻐요!" 라며 칭찬해줬는데 " 얘네들 사이에서 제일 예쁘다는 게 칭찬이야 욕이야..? " 하며 헷갈렸다고 말했습니다. 장미란은 선수시절. 최중량급 체격을 유지하기 위해 끼니마다 스테이크를 10장씩 먹어야 했던 것이 운동보다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무려 한달 식비가 2천만원이 넘어갈 정도였다고 하죠. 장미란은 당시 다른 선수들이 뼈를 깎는 감량을 하는 것에 비해 본인의 고생은 크지 않다고 생각해 힘든티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미란의 꿈을 멀리서 응원하며 지원해주던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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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장미란의 성공 후 대부분 모습을 드러냈지만 '키다리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어느 한 조력자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걸 원치 않아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력자가 장미란에게 쓴 편지 내용이 큰 화제가 됐는데요. "장미란 선수가 올림픽을 앞두고, 억지로 음식을 먹으며 체중을 늘리려 애쓴다는 내용의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음식 마음껏 드시며 국민들께 큰 기쁨을 주세요."" 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장미란은 빛나는 업적을 이룬 후, 몇차례 인터뷰에서 자신을 도와준 조력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세계 누구도 들지 못한 무게를 들어올린 장미란 선수죠." "정 보답하고 싶으시거든 가끔 우리 가족과 만나 함께 식사합시다." 라며 조력자는 장미란에게 괜찮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훗날 이 '키다리 아저씨'는 전 오뚜기 회장 '함태호'씨로 밝혀져 모두의 놀라움을 자아냈죠. 장미란은 과거 예능에서 아버지와 깜짝통화를 했습니다. "딸의 가장 예쁜 곳이 어딘가요?" "없죠." "최고의 보물은 무엇인가요?" "미란이가 사준 자동차요." 아버지는 장미란이 예상한 답변을 모두 피해갔죠. 이에 장미란은 "그래도 아버지가 마음이 여려 딸이 잘해도 울고 못해도 우세요." "딸에겐 뭐든 다 해주는 아버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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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엄마 편만 들었는데 이젠 아빠 입장 에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라며 훈훈하게 마무리 했습니다. 웨이트 운동, 즉 '쇠질'이란 것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장미란을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라고 표현합니다. 보통 운동을 안 해본 사람들은 장미란을 보며 '그냥 무거운 거 잘 드는 덩치 큰 누나' 정도로 생각하는데 운동을 좀 해본 사람들은 "장미란은 진짜 탈인간이에요." 라며 감탄한다고 합니다. 전성기 시절 장미란은 '티코'나 '레이' 같은 가벼운 경량 차량 정도는 혼자서도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을만큼 엄청난 힘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손석희와 함께한 방송에선 폭넓은 상식으로 우수한 언변을 구사하는 모습의 반전매력까지 보여줬죠. 지금 보고 계신 사진은 세계랭킹 2위 보디빌더 '브랜치 워렌'이 230키로짜리 풀스쿼트를 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번에 15개 정도 한다고 하는데요. 장미란 선수에게 이정도 무게는 아주 평온합니다. 참고로 저 남자 선수는 약까지 사용했다고 해요. 장미란은 인상, 용상, 합계 모두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 했습니다. 은,동메달을 차지한 2,3위 두 선수는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적발돼 메달이 박탈됐죠. 참고로 2,3위 기록은 270,277kg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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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은 약 없이도 총 326kg의 무게를 들어올려 압도적인 차이로 약물러들을 잠재웠죠. 장미란이 세운 기록을 살펴보면 1998년 중학교 3학년 때 역도 입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한국여자역도 최초' 은메달 2005,2006,2007,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제패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75kg급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국제역도연맹 올해의 여자선수상" 수상 2013년 은퇴. 하나하나 아주 굵직한 업적들뿐 이며 장미란은 전무후무한 세계선수권 대회 4연패, 올림픽 우승 등의 대업을 이룬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그녀는 올림픽,세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 등 출전할 수 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해 '그랜드슬램'을 이뤄냈죠. 장미란은 박태환과 친한 사이로 유명합니다. 둘은 올릭핌에 함께 참가하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럽게 서로 알고 지내다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던게 서로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하죠. 둘은 베이징올림픽 이후 가는 곳마다 '국민 남매'로 불렸습니다. 박태환은 장미란에 대해 "내가 본 운동선수 중 자기 관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은 미란이 누나다." "나도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데, 누나를 보면 내가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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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했습니다. 한 일화로 과거 '승승장구'라는 프로그램에서 둘 사이에 스캔들 계획?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는데요. 런던 올림픽 때 장미란은 박태환과 야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즉흥으로 '런던 스캔들'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나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따고, 너도 크게 한 건 한 게 없으니 네가 나한테 고백을 해. 그럼 내가 싫다고 할게ㅋㅋㅋㅋ" 라며 박태환과 런던 스캔들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장미란은 국내 역도 선수 중 첫 억대연봉자라고 합니다. "선수로서 큰 영광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 연봉도 함께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연봉의 가치를 보이겠습니다" 라며 소감을 밝힌 적이 있죠. 장미란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스포츠선수로 꼽힙니다. 그녀를 욕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민심이 좋은편이며 혹시라도 장미란 선수에 대한 악플이 달리면 모두가 나서 그 악플러에게 매운맛을 보여준다고 하죠. 그녀의 민심이 이렇게 좋은 이유는 국위선양,선행,훌륭한 인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미란은 지덕체를 모두 겸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장미란은 "선수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나요?" 라는 질문에 대해 "세계신기록 달성이요!" "런던올림픽이 많이 기억에 남아요" "많은 분들이 저의 메달 획득 여부에 상관없이 큰 사랑과 격려를 주셔서 선수로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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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이 은퇴하던 날. 새로운 챔피언과 메달리스트들은 경기가 끝난 후 그녀를 찾아와 위로했고, 관중들은 엄청난 박수갈채로 '살아있는 전설'의 퇴장을 아쉬워했습니다. 장미란은 늘, 그 누구보다 비인기 종목인 역도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항상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훈련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결코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미란은 " 역도를 하면서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늘 행복했습니다. "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 "앞으로 '장미란재단'을 통해 꿈나무들이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라며 은퇴소감을 전했습니다. 장미란은 2012년 2월. 자신의 이름을 딴 '장미란 재단'이라는 스포츠재단을 설립해 현재까지 비인기 종목의 후원을 위 해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스포츠 꿈나무들의 교육 프로그램, 스포츠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환경이 어려운 스포츠 청소년, 탈북 청소년 등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장미란은 은퇴 후 박사 학위를 취득해 용인대 교수로 임용되었고, 2017년부터 미국의 한 대학에서 스포츠 행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죠. 현재 장미란은 115kg 정도의 체중을 유지했던 현역 시절과 달리 자연스러운 식습관을 통해 근육도 많이 빼고 체중도 줄여 "정말 장미란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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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슬림해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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